- ▲ photo 김승완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 발단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공약 관련 기사를 쓰기 위해 여기저기 자문을 구하던 지난 1월 초였다. 자료를 뒤지던 중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교육정책에 대해 “김영삼 정부 시절 ‘5·31 교육개혁안’과 다를 게 없다”는 평가를 내리는 이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5·31 교육개혁안이란 김영삼 정부 출범 2년 3개월 만인 1995년 5월 31일 당시 대통령 직속 자문기관인 교육개혁위원회가 내놓은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는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방안’의 다른 말.
호기심이 일어 자료를 좀더 뒤졌다. ‘열린 교육체제 구축을 통한 교육복지국가(Edutopia) 건설’을 비전으로 내세웠던 이 개혁안의 기본 특징은 ‘학습자 중심의 교육’ ‘교육의 다양화’ ‘자율과 책무성에 바탕을 둔 학교 운영’ ‘자유와 평등이 조화된 교육’ ‘교육의 정보화’ ‘질 높은 교육’ 등이었다.
당시 개혁위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학의 다양화와 특성화’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대학입학제도’ ‘학습자의 다양한 개성을 존중하는 초·중등교육 운영’ 등을 제시했다. 과연 상당 부분 이 당선인의 공약과 일치했다. 구체적 실천 계획을 살펴보니 유사성은 더욱 명확해졌다. ‘대학정원 및 학사운영 자율화’ ‘수능·논술·면접 선택 전형자료로 활용’ ‘중·고교 선지원 후추첨제 도입’…. 표현만 다를 뿐 인수위가 내놓은 교육정책 방향과 거의 같았다.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전부 5·31(교육개혁안) 연장선상이에요.” 당시 교육개혁위 상임위원으로 개혁안의 뼈대를 만든 이명현(66) 전 교육부 장관과 전화가 연결됐을 때 들은 첫 이야기다. “이주호 의원(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 간사)은 5·31(교육개혁안) 만들 때 함께 일했던 전문위원입니다. 지난 10년간 겨울잠 자던 정책이 새 정부를 만나 빛을 본 거지, 전혀 없던 정책을 갑자기 들고나온 건 아니에요.” 지난 1월 22일 그를 만났다.
이명박 교육정책
대부분 교육부서 잠자던 내용 끄집어낸 것
수준별 교육·대입 자율화도 다 나왔던 계획
이 전 장관은 자리에 앉자마자 요즘 언론에 대한 불만부터 쏟아냈다. “신문을 보면 우리나라 교육에 청천벽력이 일어난 것 같아요. 실은 교육부 정책 목록에 다 있던 것을 끄집어낸 것뿐인데….”
그에 따르면 5·31 교육개혁안을 만들 당시 이미 평준화 정책을 보완하기 위해 자립형 사립고 제도와 수준별 교육과정을 제안했고 고등교육법을 손질해 대학 운영과 학생 선발에 관한 학칙을 대학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1995년에 완성된 개혁안이 예고 기간 3년을 거쳐 1998년 3월부터 시행됐고 그 사이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이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학은 정부 눈치 보느라 새 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고 교육부 관료들은 바뀐 법대로라면 권한이 축소되는데 제재하는 사람이 없으니 오히려 활개를 쳤지요. 바뀐 대통령이 교육법을 다 압니까. 그렇게 묻힌 게 10년이나 이어진 거예요.”
그러나 그는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진 지난 두 정부가 5·31 교육개혁안을 깡그리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 때 초기 교육부장관이었던 이해찬씨도 ‘5·31(교육개혁안)대로 간다’며 기자회견을 몇 번이나 했어요. ‘대한민국 교육 40년’(노무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 건넸다는 책)에도 5·31(교육개혁안)에 관한 내용이 언급돼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얼마 전 노무현 정권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을 했던 조기숙씨가 ‘왜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만 가면 바보가 될까’라는 책을 보내왔는데 거기도 5·31(교육개혁안)이 맞더라 하는 얘기가 나와요. 다들 자기 입장과 처지에 맞춰 단편적으로 해석하는 거죠.”
사교육 없어질까
좋은 학교 수백 개 만든다고 해결되나
성공 자신한다지만 구체적 내용 부족
이명현 전 장관은 인수위가 한창 교육 관련 청사진을 쏟아내던 1월 초, 평소 알고 지내던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른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와 관련, “좋은 학교가 많아지면 과외비가 절반은 줄어들 것”이라는 인수위 측의 핑크빛 전망이 언론에 연일 보도되던 시점이었다.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란 기숙형 공립고, 자율형 사립고, 마이스터고 등 다양한 성격의 고교 300개를 만들어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이명박 당선인의 공약이다.
“그런 얘기하면 나중에 책임 못 진다 그랬어요, 내가. 사교육을 왜 시킵니까. 좋은 학교 가려는 마음 때문 아닙니까. 정말 사교육을 없애려면 학부모의 그 마음, 학생의 그 마음을 없애야죠. 그게 없어지겠어요? 괜찮은 학교가 100개 더 생기면 전교 1등만 준비하던 시험을 전교 20~30등도 준비하게 되면서 관련 사교육 시장이 더 커질 거예요.
시장은 그렇게 반응하게 돼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원하는 바를 이룰지 몰라도 당장은 어림없어요. 정책 입안 단계에서 과외비 잡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건 국민을 호도하는 거예요.”
그는 “구체적 안이 나와 봐야겠지만 지금 발표된 것만으로는 새 정부의 교육 정책을 총체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구체적 내용이 뭐 있습니까. 대입 자율화도 두루뭉수리하게 언급돼 있고 학교 300개 세운다는 게 전부지요. 그렇게 몇 개 찔끔 바꾼다고 해서 교육이 좋아질 것처럼 말하면 안 됩니다.
교육은 그렇게 간단치 않아요.” 그는 교육을 자동차에 비유하기도 했다. “1000만원짜리 자동차가 있다고 칩시다. 거기에 최고급 세단의 부속품 하나를 끼워 넣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다른 부속품이 그것 때문에 다 망가집니다. 고물 차에 고급 엔진 단다고 해서 좋은 차 되는 것 절대 아니지요. 좋은 엔진을 견뎌내지 못해 주저앉아 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