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홍콩의 '깨어 있는 0.1%' |
- ▲ 송의달 홍콩 특파원
이달 들어 홍콩에서 결성된 '백인기금회(百人基金會)' 규약에 나오는 조항들이다. 이 모임은 홍콩에서 장래가 가장 확실하게 보장되고 남 부러울 것 없는 43명의 재벌 2~3세 후계자들이 의기투합해 스스로 만들었다.
가령 리더 격인 리자제(李家傑) 회장은 홍콩의 두 번째 거부(巨富)인 리쇼키(李兆基) 헝디(恒地)그룹의 맏아들로 후계 서열 영순위의 실력자이다. 또 동아은행그룹 리궈바오(李國寶) 회장의 맏아들인 리민차오(李民橋), 훠잉둥(?英東) 전 전국정협 부주석의 장손인 궈치강(?啓剛), 신세계부동산그룹 정위퉁(鄭裕?) 회장의 장손인 정즈강(鄭志剛)처럼 20~40대의 '황태자'들이 대부분이다.
운영방식도 색다르다. 초·중·고생 장학사업의 경우 700명의 불우 학생들에게 매월 3000홍콩달러(약 36만원)의 지원금과 별도로 2년 동안 멘토(mentor·조언자) 한 명씩을 붙여 공부 방법과 친구 교제, 금전 활용법 등을 돕는다.
인터넷 홈페이지(www.charity-online.org)에는 빈곤층의 생생한 고충을 실은 다음 회원들이 이를 보고 지원 방법과 규모를 직접 협의해 결정한다. 이미 리자제 회장은 자살 방지 프로젝트와 편부모 가정을 돕는 생활 재건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활동 중이다.
이 외에 가정 폭력 및 장애인 가정, 독거 노인과 이민자 정착 지원 등 10여 개 추진 사업도 정해 놓았다. 대신 이 모임을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발판으로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직·간접적인 정치활동은 원천 봉쇄했다.
일각에서는 재벌 후계자들이 여론을 의식해 계산된 행동을 한다는 눈초리를 보내지만, 지식인 사회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경제평론가인 리바팡(李八方)은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젊은 상류층이 대(代)를 이어 몸을 낮춰 봉사를 실천하려는 마음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평가했다.
이런 모습은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60명의 입법의원(국회의원) 가운데 의원용 승용차나 운전기사 같은 특혜를 제공받는 사람은 리타 판(范徐麗泰) 입법의장 한 명뿐이다. 안손 찬(陳方安生) 전 정무사장(총리 격)을 포함한 나머지 모든 의원은 개인이 기름 값 등을 부담하는 자가용을 쓰거나 전철·버스 같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한다. '입법부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서민들과 호흡을 같이하기 위해서'라는 이유에서다. 월급도 3만7000여 홍콩달러(약 444만원)로 금융기관이나 기업체 고위 임원의 20~30% 남짓하다.
"한 나라의 명운(命運)은 최상위 0.1%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외환위기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같은 위기를 헤쳐내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 홍콩의 경우만큼 이 표현이 들어맞는 사례도 드물 듯싶다.
홍콩은 경제적으로 최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최하위 10%는 0.8%만 점유(2007년·홍콩 통계처)하는 세계 최고의 빈부 격차 사회이다.
그런데도 내부 갈등이나 불협화음 없이 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자본주의의 꽃을 피우며 상하이(上海)·싱가포르 같은 경쟁 도시를 앞서 가고 있다. 그 밑거름은 바로 최상위 0.1%의 이런 '깨어 있는 정신'과 '섬기는 자세' 덕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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