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다잡기

대학가,영어전용강좌 늘어나는데…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8. 4. 7. 00:28

대학가,영어전용강좌 늘어나는데…

알아듣기 위주 강의,학문적 깊이는 기대못해

국민일보 | 기사입력 2008.04.06 18:54


#장면1.

지난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정경대학의 한 전공수업 시간. 60여명의 학생들이 프레젠테이션 자료와 함께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5분 정도 강의주제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던 담당 교수는 "Any Question?"(질문 있나요)하며 학생들을 쳐다봤다. 그러나 학생들은 묵묵무답이었다. 15분 뒤 교수는 다시 질문을 던졌으나 학생들은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수업이 30분쯤 진행되자 몇몇 학생들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수업내용과 관련이 없는 교재를 펼쳐놓거나 팔짱을 낀 채 앞쪽만 응시하는 학생들의 모습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이모(21·여·정외과)씨는 "영어로 수업을 하다 보니 놓치는 부분도 많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자주 있다"며 "영어수업이 전공과목을 배우는 데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장면2.

비슷한 시각 서울 신촌동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의 한 전공수업 시간. 담당 교수는 30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능숙하게 영어강의를 시작했다. 교수는 교재를 한 번 읽은 뒤 핵심내용을 설명해 주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고, 외국인 학생들과 질문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대부분 한국 학생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강의내용을 받아 적기 바빴다. 담당교수는 한 흑인학생과 주로 대화를 했고, 그 학생이 대답을 하지 않으면 강의실에는 침묵이 가득했다.

수업이 30분쯤 지나면서 졸음에 겨워 연필을 떨어뜨리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임모(22·신방과)씨는 "한국말로 가르칠 때는 강의가 깊이가 있었는데 영어로 가르치니 깊이가 부족하다"며 "(회화 실력이 부족해) 질문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 무력감이 들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국제화 바람을 타고 대학가에서 영어로만 수업을 진행하는 전용강좌가 크게 늘고 있지만 문제점들도 드러나고 있다. 영어전용강좌는 영어 외 일반과목을 영어로 강의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대학판 몰입교육이다. 대학들은 학생들의 영어실력을 향상시키고,국제화 시대흐름에 맞추기 위해 영어전용강좌를 앞다퉈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어 강의에 비해 수업내용이 현저히 떨어지고, 교수중심의
주입식 교육이 이뤄지며, 영어실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수업에서 소외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화여대의 한 교수는 "강의준비 시간이 1.5배는 더 걸리고, 학생들이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다 보면 진도가 늦어지기 일쑤"라며 "(언어제약 때문에) 더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김성수 교수도 "복잡한 전공용어 설명이나 자신의 의견을 순발력있게 개진해야 하는 토론 수업같은 것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희대 호텔경영학과 정규석씨는 "영어로 강의하면서 해당 전공을 제대로 공부할 수 없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며 "학문의 깊이를 낮추면서까지 영어 강의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동국대 광고홍보학과 이현정 교수는 "일단 영어수업을 늘리고 학생들의 참여를 높여야 한다"며 "처음에는 학생과 교수 모두 어려워하고 준비시간도 무척 길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엄기영 박지훈 김아진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