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교육과정

대한민국 영어교육 '어륀지'로 통할까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9. 3. 15. 21:11

 

대한민국 영어교육 '어륀지'로 통할까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매일신문사   2009년 03월 14일

 

우리나라 영어교육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핵심은 문법과 독해뿐 아니라 실제 자연스런

회화를 잘하도록 하는 것인데 그 방법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입장차가 너무 크다.

'어륀지'(오렌지의 본토발음)로 대표되는 새 정

부의 정책들은 과감하다. 원어민 영어교사를

대거 채용하고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

는 데 모든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단

영어과목은 영어로 가르치고 향후에는 다른

과목까지 영어로 가르치는 몰입교육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낳는

폐해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크다. 비판의

핵심은 아이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결국

영어 사교육만 부추길 뿐 전인교육이 될 수

없다는 것.

정부 영어교육 정책의 핵심에 있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과 대구시 교육청의

교육정책통 이병옥 교육정책국장, 이를 비판

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과감한 수정을 요구하

고 있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 박성

애 수석 부지부장과 (사)참교육을 위한 학부

모회 김정금 정책실장을 만나 4색 진단을

해봤다. 이들의 색깔은 다 달랐고 '과연 접

점이 있을까' 의구심도 들었지만, 이를 잘

조율하고 서로 합일점을 찾는다면 교육목표

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봤다.

 

◆이주호 차관, '할 수 있다' 청색 희망

이 차관은 한국의 영어교육 정책에 대한 밝

은 희망을 먼저 얘기했다. 그는 영어교육 개

혁은 "청계천 복원과 비슷하다. 해보지도 않

고 안 된다고만 하면 끝이 없다. 영원히 못

한다"고 한 뒤, "우리도 싱가포르나 홍콩, 터

키 등처럼 일상생활에 영어가 자주 활용되

고 대다수 국민들이 영어로 말할 수 있는 나

라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당장 2010년부터 고교 1학년 영어수업을 영

어로 진행할 것임을 언급했다. 이를 위해 정

부에선 교원 및 시설확보에 나서고 있으며

각 학년별로 순차적으로 영어 공교육의 틀을

완성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차관은 올해 영어회화 전용강사를 대거 투

입하고 해외 교포들을 대상으로 'TALK'(Tea

ch and learn in Korea) 프로그램을 실시해 보

다 많은 영어 교사들을 확보해 영어로 영어

과목을 가르치는 데 문제가 없도록 할 것이

라고 밝혔다. 회화 중심의 영어교육을 위해

수능시험 역시 영어회화 능력 자격시험으

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IPTV, 인터넷, 영상자료 등 각종 매체를 이               (사진 위로부터)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 이병옥 대구시 교육정책국장,

                                                                                           박성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

                                                                                           수석 부지부장, 김정금 (사)참교육을 위

                                                                                            한 학부모회 정책실장.

용한 영어교육 활성화에도 불을 댕길 태세

다. 그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영어를 할 수

있는 환경에 더 많이 더 자주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요즘 등장하는 최첨단 매체를 영어교육을 위한 가장 좋은 도구로 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차관은 중·고교 중 1년은 과목을 불문하고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터키를 예로 들기도 했다. 그는 "영어실력을 향상시키려면 영어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단계를 넘어 장기적으로는 정규 영어수업 시간을 더 늘리고, 다른 과목 수업도 영어로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병옥 국장, '노력할 것' 녹색 긍정

이 국장은 정부의 영어교육 정책의 방향이 맞기 때문에 그렇게 맞춰서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 국장은 "지금도 영어시간에 영어로 수업하는 것은 시범적으로 하고 있다"며 "어떤 경우엔 영어로 보면 이해가 더 잘되고 영어표현이 더 적절한 경우도 적잖기 때문에 영어는 영어로 가르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중·고교 영어교사 10명 중 3명 이상이 영어회화 능력이 뛰어나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에 투입해도 원만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교육청은 각 학교에 1주일에 1시간씩 영어로 하는 수업을 하도록 공문을 보내고 이를 권장하고 있다고 했다. 달성군은 이미 정부 정책의 하나인 'TALK' 프로그램을 도입해 영어수업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올해 각 학교 여유가 있는 교실에 영어체험교실도 적극 확대하고 있다. 벌써 100개교 이상에 '영어전용실'이 마련돼 있다.

이 국장은 영어 사교육에 대해서는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는 "사교육 시장에서 영어가 절반 이상이라해도 과언이 아닌데, 영어를 배우는 데 50만~100만원씩 쓸 필요가 있느냐. 공교육 부문에서 영어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고 흥미를 유발시켜 준다면 부모님의 영어 사교육비 부담도 현격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는 자질이 높은 영어교원 수급이나 학부모·학생들의 충분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정부 정책이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음도 언급했다.

"국민적인 공감대 위에서 정부 정책이 더 탄력을 받고 원하는 방향대로 가기 때문에 지금 우리 교육 현실에 있어서는 다소 부담이 되는 측면도 적지 않습니다."

 

◆박성애 부지부장, '영어 지옥' 잿빛 구름

박 부지부장은 정부에서 우리의 영어교육 현실을 제대로 알고 정책을 추진하는지 의구심부터 나타냈다. 정부 의도와 달리 벌써부터 아이들은 영어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사교육 시장만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영어정책에 대해 "영어도 결국 재미있게 다른 나라 말을 하나 더 배우는 수준이 돼야 하는데, 이상열풍이 불고 결국 또 평가 위주의 영어교육으로 숨막히는 긴장감만 교육현장에 감돌 뿐"이라고 비판했다.

또 "현 정부의 정책은 교육적 측면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 영포자(영어포기자)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데 '따라오지 못하면 도태되라'는 메시지만 남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부지부장은 기타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도 "학문적으로 들어가면 영어로 이해하고 개념화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하겠느냐"며 "영어로 말하기도 힘들 정도인데 이는 학생들에게 너무 큰 부담"이라고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교육의 이상적 모델로도 현 정부가 추진하는 영미식 경쟁교육이 아닌 핀란드식 대학 평준화를 언급했다. 빈익빈부익부로 대변되는 영미식 교육시스템은 교육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기 때문에 교육성과가 아닌 만족도가 최상인 핀란드식 교육으로 가야 전 국민이 교육 스트레스를 덜 받고 전인교육이 가능해진다는 것.

 

◆김정금 정책실장, '모국어 주권 박탈' 옐로 카드

김 실장은 "영어교육 내실화가 우선이며, 아이들이 모국어로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영어 몰입교육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영어로 못하면 학교 공부를 하는 것조차 힘들게 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정당하지 못하다"며 "모국어로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몰입교육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목청을 높였다. 또 "미국 아이들처럼 만드는 게 우리 교육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MB정부의 교육정책이 정치적 슬로건이나 구호에만 집착해 소리만 요란하며, 교육현장은 더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며 "교육은 무엇보다 내실이 중요하며 5년이 지나간 뒤 '정말 좋아졌네'라고 느끼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영어교육에 대한 내실화의 대안으로 현 젊은 교사들의 뛰어난 자질을 잘 활용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현재 교대나 사범대를 졸업한 젊은 교사들은 기본적으로 영어를 잘하며 해외연수도 대부분 다녀와 영어로 수업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들로도 충분히 회화 중심의 영어수업이 가능하다는 것. 더불어 현재 학교에 있는 시청각 자료나 영어 교재들도 얼마든지 잘 활용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이런 내실화는 뒤로 한 채 '영어' '영어' 하면서 강조하니까, 이로 인해 학부모들은 상당히 불안하고 사교육 시장은 더 들썩이는 역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김 실장은 영어교육 자체에 대해서는 "학교의 자율성 범위 내에서 영어수업을 더 확대하고 영어를 잘하기 위한 수업법을 개발하는 등 문제는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