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한마디 못하던 '왕따' 한국소녀,
왕족들이 찾는 아동복 CEO로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50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박세미 기자 runa@chosun.com
2009.04.03 17:10 / 수정 : 2009.04.05 08:56
지난 1월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의 취임 기념 콘서트 ‘우리는 하나(We Are one)’가 열리던 날. 맨 앞줄에 앉아있는 어린 두 소녀를 둘러싸고 전세계 수십 개 언론사 사진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졌다. 취임을 이틀 앞둔 오바마 대통령의 두 딸 말리아(11)와 샤샤(8)였다.
이 두 자매의 사진은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새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오바마’와 관련된 모든 것이 화제가 되던 때였다. 영부인의 패션 감각과 두 딸이 입은 옷까지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맏딸 말리아가 연한 하늘색 코트 밑에 받쳐 입었던 무릎 위 길이의 검은색 정장 투피스 이미지도 기자들의 사진과 네티즌의 동영상을 타고 퍼졌다.
이날 미국인의 이목이 집중된 말리아의 투피스를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한국인 디자이너 이지연(미국명 에이미 장·50)씨였다. 말리아와 샤샤는 오바마 대통령의 민주당 후보 시절 유세장을 비롯해 취임식 축하 파티 때도 이씨의 옷을 입고 나타났다.
이씨가 오바마 딸이 자신의 브랜드 옷을 입었다는 걸 안 건 시카고의 한 단골손님으로부터 온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이 단골손님은 이씨에게 “지금 TV에 오바마 딸이 나오는데, 얼마 전 내가 당신 숍에서 본 옷을 입고 있다”고 했다.
TV를 켜자 모섬유에 마일라 털실을 짜서 만든 부클레 원단의 검정색 정장 투피스를 입은 말리아가 눈에 들어왔다. 미국 상류층 어린이의 파티복으로 이씨가 디자인한 ‘The Collection by SARASARA’ 드레스였다. 이씨는 “교회 행사나 특별한 이벤트 때 입을 옷을 찾는 고객들을 위해 만들었는데 이게 오바마 측 스타일리스트 눈에 띈 것 같다”고 했다.
고급 아동복 업체인 ‘GBYM INC’에서 수석 디자이너이자 대표로 일하고 있는 이씨의 원래 꿈은 간호사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난데없는 미국행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이씨가 15살이 되던 1974년, 건축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가족 모두가 ‘새로운 희망’을 찾아 이민 길에 오른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미국에 온 이씨는 알파벳 ABC도 모르는 채 라스베이거스의 한 중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이씨는 학교에서 유일무이한 한국인이었다. 동양인이 많지 않은 학교에서 이씨는 돌아가며 ‘왕따’를 당했다. 하루는 스쿨버스를 기다리다 계란 세례를 받기도 했고 하루는 쇠로 된 열쇠 뭉치가 날아왔다. 이씨는 “누가 나에게 말을 걸까 두려워 늘 땅만 보고 다녔다”며 “매일매일 내 자신이 초라하고 우습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런 이씨에게 미술시간은 “말이 필요 없어서 무엇보다 좋았던 시간”이었다.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칭찬을 곧잘 들었던지라 미술시간만큼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옆자리에 앉는 것조차 꺼려하던 친구들도 그룹 수업을 할 때면 “에이미(이지연씨의 미국명)와 한 팀이 되겠다”며 손을 들었다. 중국인 흉내를 내며 이씨를 놀려대던 백인 아이와는 둘도 없는 단짝친구가 됐다.
- ▲ 'SARASARA'의 수석디자이너 이지연씨.
‘미술 감각이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자,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쉬고 있던 이씨에게 ‘색다른 일감’이 밀려들었다. 학교 선·후배, 동기들이 댄스파티나 행사 때 입을 ‘드레스 코디’를 이씨에게 부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의리에서 시작한 패션 코디에 재미를 붙이자 이씨는 “아, 바로 이 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 길로 이씨는 LA에서 학비가 가장 싼 학교를 찾아 나섰다. 이씨의 ‘패션’에 대한 열정이 빛을 발해 우드버리대학(WOODBURY UNIVERSITY)를 거쳐 브룩스 패션디자인 전문대학(BROOKS COLLEGE OF FASHION DESIGN)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졸업 패션쇼에서 대상도 거머쥐었다.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 ▲ 유세장에서 이지연씨가 디자인한 옷을 입은 오바마 대통령의 딸 샤샤.
패션계에 발을 디디게 된 이씨는 BIZ 등 유명한 패션 회사 몇 곳에서 막내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젊은 패기로 감당해내기에 미국 패션계의 현실은 혹독했다. 하루 종일 스케치를 한 뒤 완성한 작품 수십 장을 상사에게 들고 가면 보지도 않고 무조건 박박 찢어 ‘다시 그려오라’고 했다. 그게 날마다 반복됐다. ‘그만두겠다’는 말을 한 동료가 뺨까지 얻어맞는 모습도 봤다. 결국 짐을 싼 뒤 이씨는 몇 차례 회사를 옮겨 다녔다.
스물다섯 살이던 1984년 데이비드 하워드(DAVID HOWARD) 패션회사에서 ‘CLIMAX’ 브랜드 디자인을 맡게 되면서 이씨는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그가 디자인한 프롬드레스(미국 젊은이들이 댄스파티에서 입는 경쾌한 드레스)가 인기를 끌면서 패션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그래픽디자이너였던 남편 장성익(51·미국명 스티브 장)씨를 만나 결혼도 했다.
- ▲ 취임기념 콘서트에서 이씨 옷을 입은 말리아.(오른쪽)
이씨가 ‘아동복’의 세계에 눈을 뜬 건 첫 아기를 낳아 기르면서부터였다. ‘CLIMAX’ 드레스를 디자인하며 남은 옷감을 집에 가져와 손수 아기 옷을 만들어 입혔는데 이게 다른 아동복 회사 관계자의 눈에 띈 것. “옷이 너무 괜찮은데 15벌 정도만 만들어 달라”는 부탁에 대수롭게 않게 시작했던 일이 점점 커져, 며칠 후엔 무려 4만달러어치 옷 주문이 들어왔다.
결국 이씨는 집 창고에 간이 작업실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아동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회사 상관이 이씨를 가만히 내버려둘 리 없었다. “둘 중 하나는 그만두라”는 상관의 지시가 떨어졌다.
이씨는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내가 이 미국땅에서 드디어 뭔가 스스로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첫 딸 이름(사라·Sara)을 따 회사명을 ‘SARASARA’로 지었다. 에어컨도 없는 창고에서 남편과 오빠까지 팬티바람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도왔다. 결과는 예상 밖의 성공이었다. 사업 첫 해에만 100만달러어치를 팔았고 이듬해엔 200만달러어치를 팔아 치웠다.
이씨가 디자인한 옷의 타깃은 ‘미국의 부유한 상류층 집안 아동’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 덕분에 남편과 곧잘 “나중에 성공하면 꼭 가난한 아이들을 돕자”고 다짐했다는 이씨는 “부유한 아이들에게 옷을 팔아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주로 파티 드레스를 디자인했던 경력도 ‘어른스러운 고급 아동복’ 콘셉트와 잘 맞아떨어졌다.
미국에 왔을 때 ‘왕따’ 시절부터 탄탄히 다져온 특유의 강인함도 철저한 고객 관리의 바탕이 됐다. 사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17년 넘게 변함없이 ‘SARASARA’를 찾는 고객만도 수백 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엔 오바마 대통령의 딸과 영화배우 윌 스미스의 딸, 미국 MBA 인기 농구선수 코비 브라이언트의 딸 등이 포함돼 있다.
사업이 마냥 수월하게 진행됐던 것만은 아니다. 사업을 시작한 지 4년여 후, 위기가 찾아왔다. 주문은 밀려들었지만 물건 대금 값을 제때 받지 못해 자금난에 허덕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집까지 압류돼 공장에서 살기도 했고, 은행에 대출받은 돈을 갚지 못해 부도 위기까지 내몰렸다. 하지만 뜻밖에도 한 거래처에서 미뤄왔던 돈을 한꺼번에 넣어주면서 겨우 숨통이 트였다. 이때 이씨 부부는 한참을 서로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앞으로 평생 겸손하게 살자”고 다짐했다. 이때 ‘하늘이 우리를 돕는다’는 의미로 회사 이름을 ‘GBYM INC’로 바꿨다.
현재 이씨의 아동복 브랜드 라인은 4개에 이른다. 고급 아동 파티복으로 시작한 ‘The Collection by SARASARA(100~200달러대)가 주된 라인이고, 아동 스포츠웨어 ‘HANNAH BANANA’, 6개월에서 6세 미만 아동이 입는 ‘BABY SARA’와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20~60달러대)의 ‘TRULY ME’가 줄줄이 론칭했다. 현재 니먼 마커스(NEIMAN MARCUS), 블루밍 데일스(BLOOMING DAMLES) 등 유명 백화점을 비롯해 미국 전역에 500여개의 부티크가 있다.
이씨가 이루고 싶은 소망은 한 가지다. 가격과 상관없이 이씨의 옷을 입는 아이들이 “난 이렇게 특별한 사람이야!”라는 행복한 존재감을 느꼈으면 하는 것. 매장을 찾아와 옷을 입어볼 때마다 아이들의 입가에 걸리는 ‘그 참을 수 없는 미소’는 이씨가 작업을 하는 가장 커다란 원동력이라고 했다.
이씨의 옷은 현재 우리나라엔 없다. 쿠웨이트 왕족 자녀들이 지속적으로 그의 브랜드 옷을 찾고 일본에 일부 매장이 있는 정도다. 유럽 진출도 고려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다. 이씨는 “언젠가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지만 한국 아이들의 취향을 철저하게 분석하기 전에 섣불리 들어가긴 어렵다”면서도 “한국 아동복은 품질 면에서는 우수한데 아직까지 디자인의 독창성은 부족한 것 같다”는 애정 어린 질책을 아끼지 않았다.
- ▲ 오바마 딸 말리아가 입은 옷의 디자인 도안.
오바마 대통령의 딸이 입은 옷이라곤 하지만 매출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 주변에서 “홍보에 엄청난 도움이 될 절호의 찬스”라고 부추겼지만 “오바마를 등에 업고 싶진 않다”며 거절했다. 말리아·샤샤 자매가 취임식 때 입은 코트 브랜드 제이크루(J.Crew)가 언론 보도 후 쏟아지는 구입 문의로 홈페이지까지 다운된 것과는 정반대다.
이씨는 “사람들은 내게 ‘특별한 아이들이 당신 옷을 입어 기쁘지 않냐’고 묻지만 대통령 딸들이 입은 옷이라고 더 기쁠 이유가 어디 있겠냐”며 “내겐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다 똑같이 귀하고 소중하고 특별하다”고 웃음지었다.